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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인간분쇄기 조회 7회 작성일 2021-12-09 17:24:2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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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 자기 멋대로 사는법 - 나의 짧은 도전 인생 이야기 / 키키스토리 #1 kiki story

내 인생 자기 멋대로 사는법 - 나의 짧은 도전 인생 이야기 / 키키스토리 #1 kiki story

일반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잘 모른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잘 모른다. 그냥 남들 가는 방향이 맞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야 잘 사는거라고 배우며 자랐다. 마음이 꿈틀대고 하고 싶은게 생겨도 주변 사람들 가는 방향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하고싶은걸 할 용기가 나지 않는다. 나를 이상하게 보지는 않을까? 나 또한 이길이 맞는걸까? 고민하게 된다. 이게 보통 사람들 마음이다. 하지만 인생을 재미있게 살고 자신이 하고 싶은걸 어떻게 해서든 해내는 사람들을 보면 생각이 다르다. 주변 사람들 생각이나 주변 시선은 아랑곳 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만 생각하고 자기자신의 마음속을 살피며 꿈틀대는 무언가를 찾아 도전한다. 그게 바로 나다. 나는 남들 가는 삶이 싫었고 내가 하고 싶은걸 하며 살겠다고 도전하며 살았다. 군대 전역 후 부모님 부동산 투자가 잘못되어 그 부담감으로 아버지가 아프시고 부모님 하시던 가게를 어머니 혼자 맡아서 하게 되면서 어쩔수 없이 대학 복학 1년을 미루고 어머니 가게일을 도와드렸다. 일을 도와드리며 나는 꼭 성공하겠다고 다짐을 했고 책을 읽었다. 책을 읽으며 부동산으로 잃은 돈 부동산으로 갚아드리겠다고 열심히 부동산 공부도 하고 부동산 강의도 쫓아다녔다. 그리고 사업을 하겠다고 사업자도 내었다. 그게 23살때다. 쇼핑몰을 해보겠다고 다짐해놓고 사실 아무런 아이템도 없었다. 집에 있는 해리포터 책을 팔아보았다. 화곡동 도매시장을 돌아다니며 온라인으로 팔 물건을 찾아다녔다. 그러던중 사업자 냈다는 우편이 집으로 날라왔다. 어머니가 보았다. 아버지 일이며, 부동산 일이며, 가게일이며 어머니는 걱정거리가 한두가지가 아닌 상황에서 복학할 생각은 안하고 엉뚱한 생각하고 있는 작은 아들을 보며 더 걱정이 많아 보이셨다. 어머니와 나의 진로에 대한 실랑이를 하면서 그런 모습을 본 나는 어머니 마저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아 어머니와 약속을 했다. 대학만 나오면 너 하고 싶은거 해라. 대학을 갔다. 이왕 간김에 자취도 하고 테니스 동아리도 들어서 좋은 선후배를 만났다. 사업에 대한 꿈은 잊은채 하고싶은걸 찾기로 마음먹고 학교 생활하며 아르바이트를 이것저것 하며 사회생활을 했다. 그 중 엑스트라 알바를 하며 영화에 나온 모습을 보며 연예계에 꿈을 꿨다. 학교 생활하며 잠실 뮤지컬 극단에 들어가고 기성탤런트 분께 연기를 배우기도 했다. 막상 해보니 남들 앞에서 연기하는게 스트레스 받았다. 미련을 버렸다. 대학교 졸업 할때쯤 남들 토익 공부하고 대기업 취업준비 할때 나는 옷을 만들어보겠다고 옷공장에 가서 아주머니들과 미싱일을 했다. 쉽지 않았다. 나는 끈기가 없었다. 그런 내 자신이 한심할때도 있었다. 그래도 나는 내 자신이 하고싶은게 뭔지 고민하고 연구했다. 그러던중 TV에 신사동호랭이와 용감한형제 작곡가가 한창 나와서 음악 이론도 모른 상태에서 여기 까지 왔다고 했다. 그 다음날 바로 음악 작곡 책을 사고 음악 학원도 끊고 온라인 강좌도 신청하고 1년간 일반 회사를 다니며 야근 하고 집에 밤 11시에 와서 잠자기 전까지 음악을 만들다 잤다. 음악적인 재능이 1도 없었다. 그래도 그냥 계속 만들었다. 29살때 시작해서 지금까지 만들고 있다. 현재까지 만든곡만 200곡이 넘는다. 그렇지만 여전히 재능이 없다. 음악을 만들수가 있게 되면서 연예계 엔터테인먼트쪽에 관심이 다시 생기게 되면서 작곡가로 간 분들 중에 매니저 활동 하다가 음악 작곡가 쪽으로 가신 분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용감한형제 작곡가님 운영하시는 브레이브 엔터테인먼트에 매니저로 한달간 일을 했었다. 박봉에 새벽같이 나와서 아이돌들을 태우고 스케줄에 가야했다. 쉽지 않았다. 한달간 TV에 나오는 유명 연예인들 구경 실컷하고 그만두었다. 음악을 만들며 나는 계속 회사를 다녔다. 그러다 TV에 대도서관님이 케이블방송에 나오시면서 유튜브로 돈을 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순간 나는 유튜브를 하기로 했다. 그때가 4~5년전이다. 나는 컨텐츠가 없어서 그때 당시 저작권이 심하지 않을때라 해외 영상을 위치만 바꾸어서 올려도 문제가 전혀 되지 않았다. 그렇게 1년 정도 웃긴 영상들을 올리다가 한영상이 떡상을 했다. 나는 흥분했다. 하루에 광고수익이 그 영상에서만 5만원씩 들어왔다. 구독자도 점점 늘어갔다 흥분한 나머지 KBS 영상도 건드리게 되었다. 망했다. 수익이 들어오기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 계정이 정지를 먹었다. 1년간 사용을 할수가 없었다. 지금 현재 채널 구독자가 거의 그때당시 모였던 구독자 이다. 컨텐츠가 없는 나로선 키울수 있는게 많지않았다. 그래도 내 인생을 포기 하지 않았다. 성격바꿔보겠다고 모바일홈페이지 만드는 회사에서 전단지 들고 방판 영업을 1년간 했다. 엄청난 명함을 받아가며 일한 결과 성격이 엄청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나서 네일 재료상 영업을 했다. 회사 소속으로 일을 하다 거래처가 생기면서 회사를 나와 개인딜러로 활동을 했다. 그러다가 어플만드는 이사님을 알게 되었다. 같이 네일 시장을 접수하자며 플랫폼 사업을 같이 하기로 했다. 이사님은 어플을 만들고 나는 영업을 했다. 20여군데 샵 원장님들이 어플 사용하게끔 했다. 어플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내가 봐도 사용안할거 같았다. 디자인도 안이쁘고 실용적인 기능이 없었다. 답답했다. 하던일을 멈추고 국비지원받아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자바 부터 안드로이드 html,css,iot 등을 배웠다. 수업이 너무 어려웠다. 진도를 못 따라갔다. 중도에 포기 했다. 다시 네일 영업을 하려다 몇개월이 지나 하려니 원장님들은 좋게 보지 않았다. 일주일에 두번씩 방문하던 사람이 한참 오질 않다가 보이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신뢰가 없어졌다. 다시 새로운곳을 찾아서 뚫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도 내 삶을 포기하지 않았다. 집근처 화장품 회사를 들어가게 되었다. 온라인 팀으로 가게 되었다. 이전에 하고 싶었던 쇼핑몰 쪽으로 일을 해볼수 있었다. 일을 하며 화장품 공장 사장님들도 알게 되었다. 대표님과 성격이 맞지 않아 회사를 그만두게 되었다. 약간 배운 온라인 쇼핑몰 및 마케팅적인 기술로 프리랜서 일을 해보기로 했다. 사업자도 다시 내었다. 일을 하다 중국 어린 청년 들이 나보고 메이크업 제품 생산 하는곳을 찾아달라고 했다. 때마침 일하며 알게된 화장품 공장 사장님을 소개 시켜드렸다. 중국 청년들은 2억 가까이 생산 오더를 냈다. 나는 사장님과 계약서 없이 구두상으로 생산오더에 몇원씩 받기로 했다. 3자 대면을 한 이후로 나는 안중에도 없었다. 돈 주실 생각을 안하셨다. 연락을 계속했다. 저녁을 얻어먹으며 100만원 받고 나는 끝났다. 1000만원 가까이 받을수 있을줄 알았다. 어리고 경험이 없던 나는 좋은 경험 했다 셈치고 또다시 다른 업체 일을 프리랜서로 하기 시작했다. 하면서 개인사업자 낸거로 오픈마켓 및 쿠팡 등에 물건들을 올려놓고 판매했다. 물건이 잘 팔리는게 있었다. 하지만 자본금이 없었다. 물건은 잘 팔리고 있었지만 물건살 돈은 계속 나가고 정산 들어오는 돈은 너무 늦게 들어왔다. 통장에 잔고가 계속 줄어들었다. 대출은 받기 싫었다. 위험부담은 안고 가고 싶지 않았던거 같다. 사업가적인 마인드가 크게 있지는 않은거 같다. 이것저것 팔면서 프리랜서로 다른업체 일을 해주다 돈을 못 받는 경우도 생기고 어리고 경험이 없던 나머지 돈 받아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도 포기 하지 않았다. 다시 다른 오픈마켓만 운영하는 회사에 들어가서 오픈마켓 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우고 또다시 나와서 다른 유통 채널인 복지몰 폐쇄몰만 하는 유통회사에 들어가서 그 쪽분야에 대해서 배우고 나오고 해외쇼핑몰 하는 회사에 들어가서 해외쇼핑몰 하는거 배우고 나오고를 반복하다보니 깊은 지식은 아니지만 얕고 폭넓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경험하며 배운 지식으로 현재 다시 나는 프리랜서로 안정적인 수입을 얻으며 일을 해나가고 있다. 현재 내 나이 35살이다. 아직 한창이다. 나는 지금 나름 편하게 돈을 벌고 있지만 아직도 배고프고 아직도 목마르다. 계속해서 새로운거에 도전하고 목표를 가지며 살아갈거다. 유튜브도 다시 새롭게 시작하려고 여태까지 올려놓았던 영상들을 다 지웠다. 이제부터는 구독자분들에게 도움되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려드리고 싶어 이렇게 유튜브도 다시 도전한다.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도전하는 인생이 나는 재미있다. 앞으로도 새로운 일에 도전을 하며 살 생각이다. 하루하루 행복하게 살고 싶다. 그렇게 모두가 잘 살수 있다. 모두가 행복해질때가 내 이야기는 계속 될거다.
메로나츕츕 : 한편의 인간극장 같은 글이네요... 키키스토리님께서 그동안 고생하셨던것들은 돈주고도 살수없는 훌륭한 가치로 반드시 보상받으실거라고 믿습니다! 응원할게요. 또 좋은 이야기 들려주세요
김미란 : 많은 경험을 하셨네요. 감동스러워요...ㅠㅠ
Jeremiah Irving Euro : 키키님 목소리 좋네요 더 자주 들을 수 있으면 좋을텐데
kiki story : 아 에구 진짜 진짜 감사해요 이렇게 제가 올린 영상 시청해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구독자도 안늘고 조회수도 안나와서 유튜브도 지치고 그럴때도 있긴한데요 다시 힘내서 앞으로 좋은 이야기 많이 들려 드릴게요 다시 한번 감사합니당
kiki story : 아 ㅎ 저도 왜 그랬는디 모르겠지만 젊었을때는 열정적으로 살긴 했던거 같아요 ^^

마음의 병 공황장애 극복 이야기 - 키키스토리 kiki story #2

마음의 병 공황장애 극복 이야기 - 키키스토리 kiki story #2

공황장애란 연예인들만 걸리는 병인줄 알았다. 그 느낌이 어떤건지도 몰랐고, 이런 병이 나한테 생길거라고는 전혀 상상하지도 못했다. 어느 날 미용실을 갔는데 가운을 입혀주었다. 근데 그 가벼운 가운이 너무 답답하게만 느껴졌다. 갑자기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배가 아팠다. 머리 한가닥 자르자 마자 화장실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약간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런데 다시 가운을 입히는 순간 또 공포감이 몰려왔다. 이건 화장실 가고 싶은 심정이 아니었다. 그냥 그자리에서 죽을것만 같았다. 머리 자르는 중간에 죄송하다며 결국 다음에 오겠다고 하고 미용실을 나왔다. 왜그러지 왜그러는거지? 이런 느낌은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고 너무 당황스러운 나머지 건물 건너편에 있는 심리상담센터에 가서 바로 상담을 받았다. 그림도 그리고 상황설명도 하고 하면서 내린 결론은 여기서는 고칠수 없는거라고 하셨다. 근처 정신과에 가야 한다고 했다. 공황장애라고 하셨다. 당장 정신과에 가지 못했다. 정신과라는 곳이 익숙지 않았고 그냥 가고 싶지 않았다. 공황장애 약을 먹어야 한다고 했다. 그 약을 나는 먹기 싫었고 공황장애를 인정하지 않았다. 약을 안 먹고도 극복할수 있을거라 생각했다. 괜찮아지겠지 하며 일상 생활을 보냈다. 그런데 어느날 회사 출근길 지하철을 타려고 기다리다 지하철 문이 열려 들어가려는 순간 발이 떼지지 않았다. 들어갈수가 없었다. 들어가는 순간 나는 죽을거라 생각했다. 안되겠다 싶어 다시 집으로가 차를 끌고 나왔다. 차를 타고 출근 하기로 했다. 동네 근처에서 회사로 가는길 저 앞에 차들은 막혀 있었고, 내 눈앞에는 빨간불이 켜져 있었다. 순간 또 식은땀이 났다. 저멀리 막혀 있는 곳까지 갈수가 없었다. 막히는 구간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죽을거 같았다. 미칠거 같았다. 나는 다시 유턴을 했다. 집으로 그냥 돌아왔다. 회사 대표님께 전화하여 오늘 출근을 못할거 같다 말씀드리고 정신과를 가려고 동네 병원을 알아보았다. 전화 하는곳마다 예약제라고 오늘 당장 상담을 받을수 없다고 했다. 5번째 정도 전화 했을때 그 병원은 나의 심각성을 감지했는지 이따가 1시간 뒤에 오라고 했다. 가서 나는 상담을 받았다. 공황장애가 맞았다. 공황장애 종류가 엄청 많았다. 나는 약간 폐쇄적인 공간을 두려워 하는 공황장애였다. 매주 병원을 방문하면서 약을 조절해가며 먹기 시작했다. 나는 그 약이 먹기 싫었다. 그래서 먹는둥 마는둥 하면서 출근길에만 조금씩 먹으며 출근길을 참아가며 회사 출근을 했었다. 항상 지하철 들어가기가 겁났다. 괜찮겠지 하면서 꾹 참고 탄다. 근데 진짜 지하철 안에서 항상 사람들이 많아지면 죽을것만 같았다. 식은땀이 너무 흘렀고, 화장실이 가고 싶어졌다. 매일같이 지하철을 두세번 중간에 내렸다 탔다를 반복하면서 출근했다. 퇴근길에는 사람들 많이 없을때 지하철을 타곤 했다. 이 공황장애가 왜 생겼을까? 고민을 해보았다. 나는 항상 조급함 속에 30대초반을 보냈다. 무언가 이루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며 살았던거 같다. 그때 당시 회사를 다니면서 사업자도 있었다. 회사 다니며 사업을 병행했던것이다. 나는 신경쓸게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그 상황에서 작게 투자했던 샵앤샵 디퓨져 사업이 잘 되지가 않았다. 큰손해는 아니었지만 그냥 뭔가 조급해졌다. 회사 일이 끝나고 온라인 쇼핑몰 판매하는 거부터 디퓨져 부터 또다른 뭔가를 또 진행하려고 이 사람 저 사람 만나고 다녔다. 회사를 다니면서 할수 있는 일들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나는 꼭 잘 되서 회사 생활에서 벗어나겠다는 생각속에 빠져 그냥 명확한 계획없이 일만 벌렸던 것이다. 그런 조급함과 편하지 못했던 하루하루가 쌓이면서 심적으로 병이 생겼던거 같다. 나는 정신과를 다니며 3~4개월간 약을 먹으면서 공황장애 치료 해주는 한의원에도 가서 침도 맞기도 했고 다른 방법이 있나 고민하면서 우선적으로 마음이 편안해지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다. 벌려놓았던 일들을 다 멈추고 일끝나고 와서 테니스 동호회에 들어서 아저씨 아주머니들과 함께 테니스도 치며 운동도 하고 내 자신을 편안하게 하려고 노력을 많이 했다. 그러던중 청담에 계신 대표님을 알게되면서 나보고 일을 도와달라며 여기서 일을 하면 청담에 자취방 하나를 구해주시겠다고 하여 기존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그 대표님이 계신 회사에 가서 출근에 대한 두려움 없이 거기서 지내면서 그때 약도 끊게 되었다. 공황장애가 걸릴 상황들이 없었다. 자취방에서 회사까지 출근 길이 엄청 가까워서 부담이 전혀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대표님이 병원 쪽 일을 하고 계셨기 때문에 나와 같은 사람들도 많이 보셔서 그런지 나에 대해서 이해를 많이 해주셨던거 같다. 나를 이해해주고 생각해주는 사람이 한명만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편했던거 같다. 공황장애 걸렸을 당시에는 진짜 누구와 같이 했던것도 아니고 혼자 발버둥을 치다보니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도 없었고 홀로 외로운 싸움을 했던 것이다. 사람은 혼자여서는 안되는거 같다. 그 대표님이 잘해주셨지만, 몇개월간 일한 이후에 내가 할수 있는게 없다고 판단하여 대표님께는 죄송하지만 일을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게 되었다. 나는 아직도 공황장애 걸린 이후로 고속버스는 한번도 안타봤다. 사실 지하철도 현재 출퇴근 하는 일이 없어서 또 그런 상황이 오면 공황장애 느낌을 받을 수 있겠지만, 지금 나는 공황장애 약을 안먹은지 벌써 1년이 넘어가고 있고, 아직까지는 별탈없이 잘 지내고 있다. 공황장애는 마음의 병이다. 내가 내 마음을 알아주지 못해서 생긴 병인거 같다. 너무 채찍질을 했던거 같다. 이제는 그러지 않을거다. 내 마음을 잘 다스리며 힘들다고 할땐 쉬어가며 앞으로 살아갈 것이다. 조급하지 않게 차근히 하나하나 이루며 과정속에서 행복을 찾으며 살아갈 것이다. 모두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란다.
Jeremiah Irving Euro : 키키님의 숨겨진 이야기는 처음 들어보네요
kiki story : 아 네 ㅜ ㅎ 공황장애 다시는 걸리고 싶지 않아요 ㅜㅜ ㅎ

13살 꼬마의 고군분투 성장기, 「마녀 배달부 키키」

영화 「마녀 배달부 키키」는 13살 꼬마 마녀 키키가 정들었던 고향집을 떠나 좌충우돌하면서 낯선 동네에 적응해가는 이야기입니다.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우리는 여기 저기 부딪치고
이런 저런 상처를 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럴 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다시 한 번 일어나는 용기와
나의 용기를 응원해 줄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마녀 배달부 키키」는 저에게 그런 친구 같은 영화입니다.

그래서 저는 키키가 고향집에 보낸 편지의 마지막 문장을 참 좋아합니다.
"울적해질 때도 있지만 저는 이 마을이 좋습니다."
저도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고 싶습니다.
AA A : 이 영화의 진정한 묘미는
1. 판타지적이지만 현실적인 배경
2. 사춘기 소녀의 사소하지만 섬세한 감정 묘사들
Jay Lee : 영상 잘봤습니다^^ 중간에 톰보가 친구들한테 키키 소개시켜주려 할때, 키키가 화나서 그냥 가버린 이유 엄청 명확해요!! 7:10 9:52 조수석에 앉은 여자애가 지난번에 할머니 청어파이 싫다고 쌀쌀맞게 군 손녀거든요!
샤량해샤량해 : 오늘 스크린으로 보고 왔어요~ 리뷰를 잘 해주셔서 그 감동이 다시 밀려오네요. 따뜻하며 습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키키가 지금보다 더욱 행복하고, 성숙해진 모습으로 성장해 나갈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나만의 길을 찾고 있는 청소년 뿐만 아니라 사회생활하며 지친 마음을 위로 받고 싶은 분들께 완전 강추입니다~
Alejandro Gillick : 영화 못지 않게 늘봄님도 멋지시네요! 요즘 같은 각박한 때에 지브리 영화가 한 줄기 빛처럼 다가왔는데 늘봄님이라는 보물까지 발견한 느낌입니다 좋은 영상 기대할게요 ㅎㅎ
+방금 다른 영상까지 봤더니 좋아하는 영화 투성이네요!ㅎㅎㅎ
박지영 : 어렸을때 봤을땐 우르술라와 키키가 하는 말이 지루하고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지금은 몇번이나 다시보고 싶고 마음속에 계속 남는 장면이 되버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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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키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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